초계최씨자료

[스크랩] 초계 최씨 (草溪 崔氏)

최길용 2016. 1. 10. 17:36

    초계 최씨 (草溪 崔氏)

 

 1> 시조 :  최용궁[崔龍宮]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초계(草溪)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초팔혜현인데,
     경덕왕때
팔계 고쳐서 강양군(합천)의 영현으로 삼았다가 고려때는 초계로 하였고,
     1913년 합천군에 병합하여 지금은 합천군에 속한
초계면으로 남아있다.

     초계최씨(草溪崔氏)는 전주최씨에서 분파되었고 문헌에 의하면 시조 최용궁(崔龍宮)
     전주최씨 일파의 시조
최균(崔均)의 4세손으로, 1296년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충익대보조공신으로 판사와 참찬을 거쳐 광록대부로 세자태부에 이르렀으며,
     팔계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초계로 하여 문호를 열었으나, 상계의 기록이
     실전되어 그의 13세손
신재(新齋), 산두(山斗)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산두는 참봉을 지낸 한영(漢榮)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용모와 기개가 뛰어났고
     학문을 좋아하여  9세때 까마귀가 그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봉양함을 보고 그에 감동하여
     영오시(詠烏詩)를 지었다.  1513년(중종8)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을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후 호당(湖堂)에 뽑혔으며, 사간원 헌납, 지평(持平)을 거쳐
     의정부 사인에 올랐다.

     산두는 슬하에 교적에 오른 병길(丙吉)과  장령을 지낸 정길(丁吉) 형제가 있었으며,
     후세에서는
규록(圭祿)의 아들 경모(璟模)가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백의종군한
[이]는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수문장이 되어
     명망높은 가문을 빛냈다.

     이렇게 명문의 후손임을 자랑하는 초계최씨는 전국 일가찾기 운동을 전개하여
     1971년 7월 20일 광주에서 대종회 총회를 개최하였고,
     28세손
동련(棟連), 병오(炳吾)가 대표하여 전국을 순방하며 종친들의 힘을 얻어
     1976년 6월 25일 초계최씨 대종회 지역대의원 총회를 열고 초계최씨 대동보 편찬사업을
     결의한 후 이를 강력히 추진하여 대동보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성했으며,
     또한 고종때 훼철(毁撤)되었던 도원서원(道源書院)을 후손들이 중건, 1977년 6월 29일에
     위패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초계최씨(草溪崔氏)는 남한에 총 5,158가구,
     22,20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전북 순창군, 정읍군 일원

전남 여천군, 담양군 일원

     전북 남원군, 부안군 일원

전남 승주군, 고흥군 일원

     전북 옥구군 일원

전남 강진군 일원

출처 : 공명선생
글쓴이 : Hurst cho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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