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출판인 친구의글......나와 제일친한친구 조각가 최기원에 이야기
새콤 달콤 매콤한 맛집에 얽힌 사람 이야기(5)
조각가
김 승 환
호백구(狐白裘)를 아시나요? 여우 겨드랑이 흰털로 만든 겉옷으로 전국시대에 1만 냥을 호가하던 명품 중에 명품이다.
맹상군의 목숨을 구한 것은 소양왕의 애첩의 간청 때문이라는 것을 앞에서 말한바 있는 데, 애첩은 조건을 달기를 맹상군이 소양왕에게 바친 호백구를 자기도 꼭 갖고 싶다는 게 아닌가. 이미 왕에게 선물한 (세상에 한 벌 밖에 없는)옷을 어디서 구한단말인가. 맹상군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곁에 앉은 천하의 식객들도 유구무언이었다. 이때 말석에 앉았던 구도(狗盜)가 나섰다.
“소인이 미천한 잔재주를 부려 보지요.” 왕의 보물 창고로 숨어든 하찮은 개 도둑, 아니 구도의 귀신 같은 훔치기로 애첩에게 호백구가 전해졌음은 물론이다. 대저 명품뇌물이란 이렇게 목숨까지 살리는 약발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뛰어난 조각가인
1959년, 요새는 친일 작가군(作家群)에 끼여 그 명성에 얼룩이 갔지만 좌우간 뛰어난 조각가였던
1948년 홍익대 미술학부의 실질적인 창설자인
1958년 홍대 교수를 사임하기 직전 대방동에 <전통 도자기 생산 공장>를 차렸을 때, 이 대통령이 찾아올 정도여서 세간에서는 그를 ‘미술계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1957년, 남산 중턱에 세워졌던 <
그런 스승을 도와 동상 작업의 마무리를 총지휘 할 때였다.
그보다 앞서 1957년, 종로 장안 빌딩 곁에 있던 작업장에서
그는 그 바쁜 중에도 명동에 나와 글쟁이와 어울려 술값을 내고 또 친구들을 연지동 자택으로 끌고가 어머니가 하던 구멍가게 한 켠의 술독에서 술을 퍼날라 밤새도록 취하게 했다. 조흥은행 동대문 지점장을 지낸 아버지는 일체 그런 행동을 모른 채 했다.
술꾼 일행에는 나를 비롯해
지금도 말술을 서슴지 않는
5, 60년대는 화가의 누드 모델이란 직업관이 설립되기 전이라 모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종로 3가 사창가의 여인들은 웃돈을 쳐주어도 공개적으로 옷을 벗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들은 우선 자존심을 살려가면서 모셔(?)와야 했다. 그런 작업에는 여인을 보듬을 줄 아는 탁월한 사교의 달인이 필요했다. 적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종로 3가에서 누드모델을 조달하던
5,16 군사혁명이 나자 이미 유명한 작가였던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는 국전 추천작가였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초대 작가이며 홍익대 전임강사이기도 했다.
그가 군에 몸담고 한 일 가운데 가장 기록할만한 작품으로 <국립묘지 현충탑>이다. 국가원수는 물론, 외국원수가 방한하더라도 제일 먼저 찾는 호국영령이 잠든 국가 최고의 상징물이 현충탑이다. 그것을 제대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어서 그의 성가는 파리 비엔날레(1963)의 출품(프랑스 현대미술관 소장)으로 당시 문화상이던 앙드레 말로의 각별한 관심과 찬사를 이끌어 내어 국제적 청년작가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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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그가 즐겨 사용하는 <탄생>의 표제는 씨앗에서 발아하는 생명의 유동성과 더불어 한 순간 한 순간의 결정체로 응어리지는 형태는 생명의 내적 리듬과 존재의 구체성을 동시에 표명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ㅡ
ㅡ <탄생>은 세계의 본질에 대한 동양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ㅡ
그는 부산 현충탑 군상, 독립기념관 조형물 <비천상>을 비롯하여 참전기념비, 전적비, 대학의 상징물,
80년대 이후 경제적 성장에 따라 새로운 건물이 도심의 곳곳에 들어설 때, 건물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건물 전면에 세우도록 한 기념조형물은 이 땅의 조각계에 일대 부흥기였고 또한 작가마다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게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ㅡ’탄생’은 일종의 원초적 생명, 약동하는 이미지를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동시에 거기에는 하늘과 땅, 또는 음(陰)과 양(陽)이라는 다원적인 우주적 대비(對比)의 조율이 내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ㅡ 이일(미술평론가)
그는 놀라운 언변과 함께 배짱 또한 두둑했다. <국립묘지 현충탑>의 모형을 만들어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할 때 얘기다. 호사다마라고 일에는 구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참모진에 줄을 대고 있던 모 작가가
그는 문인들과의 교우를 끔찍이 여겼다.
아아. 머지 않아 우리도 묻히거나 태워질 사람 일시 분명하거늘, 그래서 일까? 그가 한 소리는 귓가에 오르간 소리같은 여운으로 남는다.
“언제 한 번 청진옥으로 나와. 수육에다 소주나 한 잔 하게. 저쪽 세상에서도 먹고 오는 귀신이 대접 받는다더군. 때깔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