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 조선시대의 역장(逆葬) - 펌
역장이란 조상의 분묘 위쪽에 후손의 분묘를 쓰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압장(壓葬), 압장(押葬), 도장(倒葬)이라고도 하는데 분묘의 뇌후(腦後) 즉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에 후손을 매장하는 형태이다
이 역장은 조선시대에 금기시 되었던 매장 형태 중 하나였고 주산(主山)에서 혈(穴)로 내려오는 기(氣)의 흐름을 단절하는 가장 나쁜 형태의 매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이전에는 오히려 여러 유명한 인물들에게서 이 역장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예학의 거두 사계 김장생, 대학자 율곡 이이, 역시 대학자 우계 성혼 등등이 바로 이 역장 형태로 분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들이 역장이 나쁘다는 것을 몰라서였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런 분들은 풍수에도 조예가 깊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이유는 바로 "주자성리학적 사회질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자성리학적 질서가 사회 전반에 침투되었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사실 역장은 풍수 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정작 오래된 풍수 책에는 이 역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간혹 가다 풍수상의 이유로 역장을 쓰는 경우는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이정구의 경우 묘를 순차적으로 쓸 경우 후손 중 역적이 나온다는 말에 따라 역장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리에 따른 특별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아무런 문제없이 역장을 행했던 것인데....,이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성리학적 질서가 보급된 후인 17세기 중엽 이후이다.
조선은 유학을 국시로 출발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효종 대 이전까지 성리학의 이념은 아직 정착되지 못했었다.
오죽했으며 퇴계 선생이 혼자된 며느리에게 재가를 권유했겠는가...
이렇듯 조선 전반기에는 전대의 유풍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윤회봉사(아들, 딸이 돌아가며 제사 지내는 것), 재산의 균등 상속, 외손자의 제사 봉사, 딸, 사위, 외손의 선산 입장, 서자의 가계 계승.. 등등이 모두 허용되었다.
이러던 것이 어느덧 장남만의 봉사, 아들에게만 재산 상속(그 중에서도 장남에게만 특히 많이 상속), 외손자의 제사 봉사는 어림도 없고, 서자가 있어도 이들은 가계를 계승하지도 못하고 제사를 받들지도 못할 뿐더러, 서자는 아무리 많아도 적자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 입양을 해 와야 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물론 외손, 딸, 사위의 선산 입장은 당연히 금지되어 선산은 종산이라 불리며 그들 집안만의 안식처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17세기 중반 이후의 조선의 상황이었다.
생소하던 외래의 이념은 어느덧 우리 것 화하여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조선 성리학"이라는 독특한 학파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무렵을 전후로 조선에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적 종법질서가 발달하여, 종가의 개념이 생기고, 동족촌이 형성되는가하면, 선산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또 가문의 영광을 밝혀줄, 아들 중심의 족보(혹은 보학)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다 보니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묘소 위에 아들, 손자, 조카가 묘를 쓰는 것이 무엄하기 그지없는 고얀 놈의 짓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성리학적 종법질서가, 역으로 풍수상의 금기사항으로 채택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장의 형태는 위에서 언급한 위인들 외에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18세기 이후에는 모두 사리지고 있어 주목이 된다.
역시 성리학적 종법질서의 영향 때문이다.
● 묘소에 관계되는 용어 풀이
*분묘(墳墓)
분묘란 무덤의 총칭인데, 대체로 풍수 지리설에 의하여 자리를 잡는 것은 마찬가지다.
즉 산을 뒤로업고 남쪽을 향하면서 산의 줄기는 왼쪽으로 청룡(靑龍), 오른쪽으로 백호(白虎)를 이르고, 앞에는 물이 흐르며 주산(主山)은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앞은 몇 층의 단상(壇狀)을 이르면서 주위에 호석(護石)을 두르고 있는 것이 전반적인 형태이다.
배위가 혈을 같이 하여 한데 매장된 곳을 합장, 합묘, 합부 또는 합폄(合폄)이라 하며, 이를 다시 좌우 쌍분 또는 상하 쌍분으로 구분하여 이르기도 한다.
각각 매장된 것을 각 장 또는 각 폄이라 하는데 혈을 달리하여 매장되었을 때를 말한다,
묘를 조(兆)라고도 한다.
*영역(塋域)
무덤을 쓰기 위하여 마련된 그 지역을 일컫는 말로 이를 묘역이라고도 한다.
*봉분(封墳)
시체를 매장할 때에 무덤을 나타내기 위하여 큰 함지박을 엎어놓은 듯이 흙을 쌓아올린 봉토를 일컫는 말이며, 분상이란 말은 봉분의 높임말이다.
*용미(龍尾)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빗물이 봉분의 좌우로 흐르도록 무덤의 윗부분(얼굴)을 꼬리처럼 쌓아 올린 것을 일컫는 말이다.
*사성(莎城)
무덤의 뒤와 좌우를 병풍처럼 나지막이 흙으로 둘러쌓은 성루를 일컫는 말인데, 속칭으로 토성이라 한다.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든 땅을 말한다,
*배계절(拜階節)
계절보다 한층 얕은 곳으로서 자손들이 절을 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곳을 일컫는 말이다.
*순전(脣前)
무덤의 배계절 아래의 내리바지 언덕을 일컫는 말이다.
*권조(權兆)
(좋은 묘지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마련된 무덤을 권조라 하는데, 이를 권폄(權窆) 또는 중폄(中窆)이라고도 한다
권장(權葬)에 의하여 마련된 무덤을 권조라 하는데, 권장(權葬)이란 풍수설에 따라 좋은 산지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가매장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완폄(完窆)
나중에 개장(改葬)할 필요가 없는 완장된 무덤을 일컫는 말로 이를 영구한 무덤이란 뜻에서 영폄(永窆)이라고도 한다.
*호석(護石)
능원(陵園)이나 공신묘(功臣墓)의 봉토를 둘러쌓은 돌을 일컫는 말인데, 능원에는 상석(床石)과 병풍석(屛風石)으로 쌓여져 있다.
이를 통속적으로는 "도래석"이라 일컬으며, 예장(禮葬- 예식을 갖추는 장례. 국장國葬)이 아닌 봉분에는
단지 봉토를 보호하기 위하여 막도를 둘러쌓은 경우가 있는데, 이를 사대석(莎臺石- 병풍석屛風石 대신으로 쓰는 돌. 봉분의 흙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놓은 받침돌)이라 일컫는다.
*곡장(曲墻)
예장으로 치른 무덤 뒤에 나지막하게 둘러쌓은 토담을 일컫는 말인데, 이를 "곡담"이라 일컫는다.
*묘계(墓界)
묘계(墓界)는 무덤의 구역으로 품계에 따라 무덤을 중심으로 하여 1품은 사방 1백보, 2품은 90보, 3품은 80보, 4품은 70보, 5품은 50보, 생원과 진사는 40보, 그리고 서민은 10보로 제한하였다.
*예장(禮葬)
예식을 갖추어 치르는 장례를 일컫는 말인데, 국장이나 나라에 큰 공이 있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나라에서 국비로 예를 갖추어 치르는 장례를 일컫는 말이다.
*면례(緬禮)
무덤을 옮겨서 다시 장사지낸다는 말인데, 이를 천장(遷葬) 또는 이장(移葬)이라고도 하며, 높임말로는 면봉(緬封)이라고 한다.
*계장(繼葬)
조상의 무덤 아래에 자손의 무덤을 잇대어 장사지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도장(倒葬)
계장과는 반대로 자손의 시체를 조상의 무덤 윗자리에 장사지내는 것을 일컫는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풍수의 결함을 보하기 위하여 행한다.
역장(逆葬)이라고도 하며 다른 말로 압장(壓葬), 압장(押葬)이라고도 하는데 분묘의 뇌후(腦後) 즉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에 후손을 매장하는 형태이다
*투장(偸葬)
남의 묘역에다 몰래 도둑장사 지내는 것을 일컫는 말인데, 이를 도장(盜葬) 또는 암장(暗葬)이라고도 한다.
*묘비(墓碑)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의 총칭인데, 죽은 사람의 신분, 성명, 행적, 생년월일, 자손 등을 새기는 것이 통례이다.
*신도비(神道碑)
임금이나 고려시대는 종3품, 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의 무덤이 있는 근처 길가에 세우는 큰 비석으로서, 그 비명(碑銘)은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이 시부(詩賦)의 형식으로 운문(韻文)을 붙여서 찬술하여 세운 비이다.
대개 무덤 동남쪽에 위치하여 남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神道)라는 말은 죽은 사람의 묘로(墓路) 즉 신령(神靈)의 길이라는 뜻이다.
*묘갈(墓碣)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서 그 문체는 신도비와 같으나 3품 이하의 관리들 무덤 앞에 세우며 규모가 작고 빈약하며 비두(碑頭)에 가첨석(加檐石)을 얹는 것이 통례이다.
*단갈(短碣)
무덤 앞에 세우는 작고 윗부분이 둥근 빗돌을 일컫는 말이다.
*묘표(墓表)
묘표를 흔히 표석(表石)이라 하는데, 이는 죽은 사람의 관직, 명호를 전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그의 사적, 입석년월일과 입석자(立石者- 死者의 후손) 등을 새기는데, 이에는 운문(韻文)을 달지 아니한다.
*비명(碑銘)
비석에 새기는 비문(碑文)을 일컫는 말인데, 신도비나 묘갈 등 비신 머리에 전자(篆字)로 새기는 문자를 두전(頭篆)이라 하며, 비석 앞면에 새긴 문자를 표기(表記. 碑表銘), 뒷면에 새긴 문자를 음기(陰記. 碑陰銘)라고 일컫는다.
*묘지(墓誌)
묘지(墓誌-墓地와 다름)를 보통 지석(誌石)이라 일컫는데, 죽은 사람의 원적, 성명, 생년월일, 행적과 생졸년월일 등을 돌에 새기거나 도판(圖版)을 구어서 그 무덤 앞에 묻는 것이다.
천재지변이나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를 잃어버릴 것에 대비한 것이다.
*석물(石物)
무덤 앞에 돌로 만들어 놓은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石柱), 석등(石燈), 상석(床石) 등의 총칭이다
*비신(碑身)
비두(碑頭)와 대석(臺石)을 제외한 비문을 새긴 부분만을 일컫는 말인데, 그 재료로는 대리석(옥석), 애석, 오석, 화강석 등으로 되어 있다.
*비두(碑頭)
비두를 두수(頭首)라고도 하는데, 비신(碑身) 위에 얹는 돌을 일컫는 말이다.
그 형상에 따라 용두(龍頭), 기린두(麒麟頭), 봉두(鳳頭), 천록두(天鹿頭), 벽사두(辟邪頭), 가첨석(加檐石- 蓋石, 蓋頭) 등으로 구분하며, 비두가 없는 것을 규수(圭首) 또는 원수(圓首)라고 한다.
*용대석(龍臺石)
이를 대석(臺石)이라고도 하는데, 비신을 얹는 돌을 일컫는 말이다.
그 생김새에 따라 거북 모양으로 만든 것을 구부(龜趺) 또는 구대(龜臺)라고 하며, 단순히 장방형으로 된 것을 방부(方趺) 또는 평대(平臺)라고 일컫는다.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뒤 무덤 앞에 놓은 장방형의 작은 돌인데, 영혼이 나와서 놀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이라 한다.
*상석(床石)
무덤 앞에 제물을 진설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상돌.
정자각에서 제향을 모시는 능원에서는 혼유석을 설치하지 아니하고 이로써 대신한다.
*고석(鼓石)
무덤 앞의 상석(床石) 앞을 고이는 돌로 북 모양으로 생긴 둥근 돌인데 이를 북석 이라고도 한다.
*걸방석(걸方石)
무덤 앞에 상석(床石) 뒤를 고이는 긴 돌
*향로석(香爐石)
묘제 때 향로(香爐)와 향약(鄕藥)을 올려놓는 돌로서 무덤 앞에 설치하는데, 이를 향안석(香案石)이라고도 한다.
*준석(樽石)
묘제 때 술통이나 술병을 올려놓기 위하여 향로석 우측에 설치하는 납작한 돌이다.
*계체석(階체石)
계체석이란 계절 끝에 놓은 장대석을 일컫는다.
상계(上階)와 중계(中階)를 구분한다.
*석의(石儀)
무덤 앞에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으로 조각하여 설치하는 석상(石像)의 총칭이다.
*석인(石人)
사람의 형상으로 조각된 석상을 일컫는 말이다.
*문관석(文官石)
무덤 앞에 세우는 문인(文人)의 석상
*무관석(武官石)
무덤 앞에 세우는 무인(武人)의 석상
*동자석(童子石)
무덤 앞에 세우는 동자의 석상
*석수(石獸)
짐승의 모양으로 조각된 조각의 석상의 총칭이다.
*망주석(望柱石)
무덤 앞에 세우는 석주(石柱)로서, 이를 망두석(望頭石) 또는 망주석표(望柱石表) 또는 화표주(華表柱)라고 일컫는다.
*석등(石燈)
무덤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하여 돌로 등대의 형상을 만든 것인데, 이를 석등룡(石燈龍) 또는 장명등(長明燈)이라고도 하며, 밑에는 긴 받침대가 있고 중대석 위에 있는 점등(點燈) 부분을 화사석((火舍石)이라고 하는데, 이는 1품 재상의 분묘에만 세울 수 있다.
(펌한 자료입니다.)
'초계최씨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광양이 낳은 호남의 지성 신재 최산두 (0) | 2015.11.06 |
---|---|
[스크랩] 광양시, ‘광양향교·봉양사가 건네는 풍류대담’ 수강생 모집 (0) | 2015.08.12 |
[스크랩] 대소산 백은거사·암연처사 묘역 문화재 (0) | 2014.07.27 |
[스크랩] 박팽년 영정....석천 윤여환 / 박팽년영정의 표현과 자세는 학자적 품격과 충절의 기상이 서린 모습의... (0) | 2013.12.26 |
[스크랩] 우리나라 성씨본관 순위 (0) | 2013.12.25 |